본문 바로가기
질 들뢰즈 & 현대 사유

우리는 왜 동일성을 추구하는가?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의 철학’

by 둥둥팍 2025. 12. 6.

동일성과 차이를 대비시키는 다양한 도형의 배열

목차


들뢰즈 차이의 철학으로 보는 동일성의 욕망

동일성을 향한 집단적 열망과 들뢰즈의 문제 제기

사람은 겉으로는 “나답게 살고 싶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놀랍도록 비슷한 길을 선택하곤 한다.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직업을 찾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유행하는 여행지를 함께 찾아간다. SNS에서는 누구나 “개성”과 “취향”을 강조하지만, 화면을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면 색감과 포즈, 문장이 묘하게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말로는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동일성을 향해 줄을 서는 존재처럼 보인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이 장면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들뢰즈는 서양 철학의 긴 역사가 동일성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이해해 왔다고 비판했다. 사람은 어떤 것을 설명할 때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하고, “정상적인 것”의 기준을 세운 뒤, 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예외나 오류로 취급하는 경향을 가진다. 들뢰즈는 이런 동일성 중심의 사고가 차이를 단순한 변형, 부수적인 것, 2등 시민으로 밀어낸다고 보았다. 그래서 들뢰즈는 “차이 그 자체”를 긍정하는 철학을 만들고자 했다.

이 글이 다루는 질문과 들뢰즈 차이의 철학의 활용 방식

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는 왜 동일성을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들뢰즈의 차이 철학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먼저 들뢰즈가 어떻게 동일성 중심의 전통 철학을 비판했는지 정리하고, 이어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동일성을 추구하게 되는 여러 이유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필자는 교육, 직장, 인간관계, 디지털 플랫폼에서 동일성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들뢰즈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들뢰즈 차이의 철학이 우리에게 “무조건 남들과 다르게 살라”는 단순한 조언을 던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더 섬세한 수준에서 “차이를 사랑하는 삶”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제안해 볼 것이다. 이 글은 철학 이론을 반복하기보다는, 들뢰즈의 개념을 일상과 연결해 보는 하나의 실험이며, 독자 각자가 자신의 동일성 추구 습관을 조용히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왜 끝내 서로 비슷해지려 하는가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과 ‘남들처럼은 살고 싶다’는 두려움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개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사람은 자기 안에 고유한 성격, 취향, 상상력이 있다고 느끼며, 그 고유함이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은 동시에 남들과 너무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은 집단에서 튀고 싶지 않고, 직장에서 혼자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망설이고, 가족 안에서 유일하게 다른 선택을 내리는 것에 강한 불안을 느낀다. 이 모순적인 감정이 현시대의 많은 고민을 만든다.

이 모순을 “개인 의지 부족”이나 “용기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비난하기 쉽다. 그러나 들뢰즈의 차이 철학을 떠올리면, 이 문제는 훨씬 오래되고 깊은 철학적 배경을 가진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단지 나약한 개인이 아니라, 동일성을 중시해온 지적 전통과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난 존재다. 사람의 사고방식 자체가 동일성을 기준으로 훈련되어 왔다.

들뢰즈 철학이 동일성 추구 문제를 새롭게 보여주는 방식

들뢰즈는 ‘같음’이 아니라 ‘다름’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제안했다. 들뢰즈에게 차이는 단순히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원리다. 사람의 삶은 처음부터 동일한 중심을 향해 수렴하는 운동이 아니라, 수많은 차이가 서로 교차하고 흔들리며 만들어지는 흐름이다. 이 관점에 서면, 우리는 동일성을 향한 집단적 압력을 단지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구조”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서론에서 필자는 동일성 추구가 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철학적 문제인지 간단히 정리했다. 이제 본론에서 필자는 들뢰즈의 차이 철학이 어떻게 동일성 중심 사유를 비판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성을 갈망하는지를 한 단계씩 더 깊이 들어가 살펴볼 것이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으로 해부하는 동일성 추구의 메커니즘

들뢰즈의 차이 철학과 동일성 비판의 핵심 구조

전통 형이상학과 동일성 중심의 사유 구조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같음”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람은 다양한 개별 사물을 묶어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같은 종류의 것”으로 취급해 왔다. 예를 들어 사람은 서로 다른 수많은 나무를 보고도, 그 개별성을 지우고 “나무라는 동일한 본질”을 찾으려 한다. 사람은 이렇게 동일한 본질을 찾는 작업을 진리 탐구로 여겨 왔다.

이 사고방식은 사회와 인간 이해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사람은 “정상적인 인간”, “이상적인 시민”,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동일성의 기준을 세워 두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문제로 간주했다. 차이는 여기서 언제나 부차적인 것이다. 차이는 동일한 본질에서 살짝 벗어난 “변형” 또는 “결함”으로 이해된다. 들뢰즈는 이런 사유를 “동일성을 중심에 두고 차이를 부수적으로 취급하는 철학”이라고 비판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와 반복 – 동일성 없이도 성립하는 세계

들뢰즈는 “차이”를 이렇게 종속된 위치에서 꺼내기 위해 매우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 들뢰즈는 세계를 동일한 본질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으로 이해하자고 말한다. 사람은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사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날의 몸 상태, 감정, 날씨, 만나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사람은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사실은 결코 같은 길을 다시 걷지 못한다. 들뢰즈는 바로 이 “반복 속의 차이”에 주목한다.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같은 것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것이 반복 속에서 계속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차이는 결핍이 아니라 생성의 원리다. 사람은 어떤 기준에서 조금 어긋난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고유한 차이를 지닌 존재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일성은 차이가 만들어낸 임시적 패턴일 뿐이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 동일성을 오히려 “둘째 자리”로 밀어낸다.

우리가 동일성을 추구하는 심리적·사회적 이유

안전과 소속의 욕구 – 차이는 설렘이자 두려움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환경이 주는 안도감을 중요하게 느끼고,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분명히 알고 싶어 한다. 동일성은 이 욕구에 즉각적인 답을 준다. 사람은 “남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통해,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사람은 집단의 평균에 가까울수록 마음이 조금 덜 불안해진다.

반대로 차이는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져온다. 사람은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 길에서 혼자가 될 가능성을 떠올린다. 사람은 “내 선택이 틀리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유별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쉽게 사로잡힌다. 그래서 사람은 차이를 향한 욕망을 느끼면서도,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동일성의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몸을 숨긴다. 이 심리적 메커니즘은 우리가 동일성을 반복해서 선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다.

비교와 평가의 체계 – 동일성이 만들어내는 ‘정상’의 기준

사람이 사는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학교에서는 성적표가, 회사에서는 인사평가가, 사회 전체에서는 소득과 직업이 기준이 된다. 이 모든 비교와 평가는 “정상적인 기준값”을 암묵적으로 상정한다. 동일성은 여기서 규범의 이름으로 작동한다. 사람은 이 규범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면서, 자신이 “너무 벗어나지 않았는지”를 계속 점검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이 비교 체계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들뢰즈는 “왜 우리는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모두를 맞추려고 하는가?”, “왜 우리는 차이가 기준에서 벗어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 들뢰즈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서로 다른 속도와 리듬, 욕망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동일성 중심의 평가 체계는 이 다양성을 하나의 눈금으로 압축해 버린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람은 동일성을 향한 경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들뢰즈로 읽는 교육, 직장, 일상의 동일성 강박

교육 현장에서의 동일성 – ‘평균 학생’이라는 상상의 존재

교육 시스템은 동일성을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장치 중 하나다. 학교는 교실마다 다른 학생을 모아놓고도, “평균적인 학생”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전제로 교육과정을 설계한다. 학생은 이 가상의 평균에 맞춰 ‘보통’ 혹은 ‘부족함’으로 분류된다. 사람은 아이가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동일성의 기준을 내면화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으로 이 장면을 보면, “평균 학생”이라는 존재는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동일성이다. 실제 학생은 모두 다른 속도로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 시스템이 동일성을 너무 강하게 강조하면, 학생은 자신의 차이를 재능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함으로 느끼게 된다. 사람은 이때부터 차이를 숨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직장에서의 동일성 – ‘조직 문화’라는 이름의 동질화

직장도 동일성의 압력이 강한 공간이다. 회사는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구성원에게 특정한 말투, 태도, 시간 감각, 가치관을 요구한다. 사람은 팀워크와 협업이라는 명목 아래,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과하게 조절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공통 규칙은 필요하지만, 그 규칙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사람의 차이는 조직의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

들뢰즈는 이런 장면에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하나의 조직 안에서 단 하나의 생각과 단 하나의 태도만을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인정하는가?” 들뢰즈의 차이 철학에 따르면, 건강한 조직은 동일성을 극대화한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차이가 조화롭지 않아도 공존할 수 있는 조직이다. 동일성의 과도한 압력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창의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디지털 시대의 알고리즘과 동일성 – 들뢰즈 시선에서 보기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취향의 동일화’

디지털 플랫폼과 SNS는 사람에게 무한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각자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추천받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쉽게 찾는다. 그러나 추천 알고리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시스템이 실제로는 동일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이미 좋아한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게 되고, 새로운 차이보다는 익숙한 패턴을 계속 소비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으로 보면, 알고리즘은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차이를 효율적으로 필터링하고 동일성을 증폭하는 기계일 수 있다. 알고리즘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이라는 기준을 데이터로 계산하고, 그 기준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은 화면에서 잘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 결과 사람의 온라인 경험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자신의 취향마저 예측 가능한 동일성의 틀에 갇히기 쉽다.

SNS의 이미지 문화와 동일성 – ‘다름’조차 유행이 될 때

SNS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이미지로 연출한다. 사람은 “남들과는 다른 개성 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서 이 이미지를 바라보면, 개성을 표방하는 방식조차 동일한 패턴을 따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비슷한 필터, 비슷한 포즈, 비슷한 해시태그가 반복된다. 심지어 “유니크한 스타일”조차 하나의 유행이 되어,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다름”을 소비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이런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들뢰즈에게 차이는 단순히 “새로운 외형”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다. 그러나 SNS의 이미지 문화는 차이를 외형적인 장식으로 축소하기 쉽다.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내면의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동일성의 껍질 안에서 움직인다. 이때 차이는 상품화되고, 동일성은 더 정교하고 유연한 형태로 유지된다.

들뢰즈 차이의 철학이 제안하는 다른 삶의 방향

‘정상’이라는 단어를 의심해 보는 작은 연습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우리에게 거창한 혁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들뢰즈 철학은 먼저 언어를 의심해 보라고 제안한다. 사람은 일상에서 너무 쉽게 “정상적인”, “보통은”, “당연히”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들은 모두 동일성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사람은 이런 표현을 쓸 때마다, 자신이 어떤 기준을 상정하고 있는지 잠시 멈추어 살펴볼 수 있다.

사람이 “보통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니까”라고 말할 때, 들뢰즈는 조용히 묻는다. “그 보통은 누구인가?”, “그 보통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동일성의 이름으로 무심코 지워졌던 차이들을 다시 보는 눈을 조금씩 갖게 된다. 이 작은 연습이 바로 차이를 사랑하는 삶의 첫걸음이다.

자기 자신 안의 차이를 발견하고 확장하기

사람은 종종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고정시키려 한다. 이 문장에는 강한 동일성이 깔려 있다. 그러나 들뢰즈의 차이 철학에서는 주체도 하나의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 변하는 흐름이다. 사람은 하루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삶 전체에서 수많은 버전의 자신을 지나쳐 온다.

차이를 사랑하는 삶은 바깥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보다, 먼저 자기 안의 차이를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 예전과 달라졌을 때, 그것을 “일관성 없음”으로 자책하기보다, 자기 안에 새로운 차이가 생겨난 징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은 새로운 배움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조금씩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허용해야 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이런 자기 변화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로 읽는다.


동일성의 시대를 건너는 들뢰즈식 사유

동일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재배치될 뿐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는 왜 동일성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들뢰즈의 차이 철학을 통해 살펴보았다. 사람은 안전과 소속, 평가와 인정의 체계 속에서 동일성을 반복해서 선택하게 된다. 교육, 직장, 가족, 디지털 플랫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일성을 강화한다. 동시에 현대 사회는 다양성과 개성을 말하며 차이를 상품으로 포장한다. 동일성과 차이는 겉으로는 충돌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동일성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동일성은 때로 의사소통과 협업에 필요하고, 사람은 일정한 안정감을 위해 공통의 규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동일성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차이를 억압하는 방식을 만드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동일성이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성과 차이가 어떤 비율과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차이를 사랑하는 삶은 ‘영웅적 독특함’이 아니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을 오해하면, 사람은 “모두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차이를 사랑하는 삶은 영웅적인 독특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차이를 사랑하는 삶은 거창한 선언보다, 아주 작은 선택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남들이 다 보는 콘텐츠 대신, 자신이 정말 궁금한 주제를 찾아 읽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모두가 좋다고 하는 목표 대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속도를 정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들은 SNS에서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고, 스펙으로 포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차이는 바로 이런 소박한 실천 속에서 자라난다. 차이를 사랑하는 삶은 남들 앞에서 드라마틱하게 특별해 보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자기 언어로 번역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나답게 다르다’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기

‘나답게’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동일성의 그림자

요즘 사람은 “나답게 살자”, “나답게 다르게 살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 말은 분명 위로가 된다. 그러나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이 말 뒤에 숨은 질문을 함께 던진다. “지금 내가 말하는 ‘나’는 누구의 말에서 빌려온 것인가?”, “내가 상상하는 ‘나다운 삶’은 진짜 내 욕망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제시한 몇 가지 모델 중 하나를 고른 것에 불과한가?”

사람이 이 질문을 피하지 않을 때, 동일성 추구 문제는 조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사람은 단지 “남들과 비슷한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충실한지”를 묻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언어를 제공한다. 그 언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동일성의 습관을 내면화했는지 깨닫고, 거기서 작은 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차이의 실천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철학 책을 몇 권 더 읽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사람 각자가 자신의 하루 안에서 “차이를 조금 더 허용하는 선택”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일이다. 사람은 오늘 하루에 한 가지라도, ‘보통은 이렇게 한다’는 말 대신, ‘나는 이렇게 해보겠다’는 선택을 연습할 수 있다. 그 선택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말투를 조금 바꾸거나, 흔히 가는 길 대신 다른 골목을 걸어보거나, 남들이 다 본 콘텐츠 대신 생소한 책 한 페이지를 펼쳐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우리에게 미래의 거대한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 이 철학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작은 차이를 알아보는 감수성을 선물한다. 사람은 그 감수성을 바탕으로, 동일성이 강요하는 한 줄짜리 인생이 아니라, 여러 길이 겹쳐진 입체적인 인생을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동일성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동일성 안에 파고드는 작은 차이의 선을 그려 나갈 수는 있다. 바로 그 순간,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철학’은 추상적인 개념을 넘어 우리의 삶 안에서 조용히 숨 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