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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 & 현대 사유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 인스타그램에도 존재하는가?

by 둥둥팍 2025. 12. 5.

좋아요를 생성하는 기계와 연결된 사람을 표현한 디지털 아트

목차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과 인스타그램 연결하기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으로 인스타그램을 다시 묻기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인스타그램 앱 아이콘을 터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은 “그냥 습관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습관 안에는 작지 않은 욕망의 흐름이 숨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엿보고 싶고, 자신의 하루를 보여주고 싶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들뢰즈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용한 언어를 제공한다.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하는 힘으로 설명했고, 욕망을 생산하는 인간과 사회를 ‘기계’라는 은유로 포착했다. 그래서 들뢰즈는 욕망하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이 글에서 필자는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바탕으로,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어떻게 사람의 욕망을 조립하고 자동화된 흐름으로 만드는지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개요에서 글 전체의 관점을 간단히 정리하고, 서론에서 들뢰즈 철학과 인스타그램 세대가 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본론에서는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먼저 정리한 다음, 인스타그램의 구조와 알고리즘을 욕망하는 기계들의 네트워크로 읽어낸다. 이어서 인스타그램 중독, 비교, 자존감 저하 같은 감정이 기계적 욕망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분석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더 건강한 사용 방식에 대한 실천적 제안을 시도한다.

이 글의 구성과 SEO 관점에서의 특징

이 글은 들뢰즈, 기계적 욕망,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중독, 비교 심리 같은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반복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이 글을 통해 철학 입문서에서 보던 추상적인 들뢰즈 개념을 인스타그램이라는 구체적인 서비스 위에 겹쳐보면서, 자신의 일상 사용 습관을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글은 개요, 서론, 본론, 결론, 마무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은 다시 세부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다. 이 구조는 검색엔진이 글의 주제를 단계별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독자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기도 편하게 설계되어 있다.


 들뢰즈 철학과 인스타그램 세대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

들뢰즈 철학이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배경

들뢰즈 철학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난해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추상적인 이론만을 위한 철학자가 아니라, 언제나 “지금 여기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한 개념을 만들어내려 했던 사상가였다. 들뢰즈는 욕망이 어떻게 사회와 자본주의 속에서 움직이는지, 사람의 몸과 도시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예술과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는지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래서 들뢰즈의 개념들은 디지털 플랫폼, SNS, 인스타그램 같은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다.

오늘의 인스타그램 세대는 끊임없는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사진과 영상, 짧은 텍스트와 이모티콘으로 관계를 맺고, 정보를 얻고, 자신을 표현한다.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프로필과 피드, 스토리 하이라이트 안에 배치하고 꾸민다. 이런 일상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 사용 습관이 아니라,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변한 상황이다.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변화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기계적 욕망이라는 개념을 인스타그램에 적용해 보는 시도

많은 사람은 인스타그램 사용을 “심심해서”, “정보가 필요해서”, “친구가 뭐 하는지 궁금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들뢰즈 철학의 눈으로 보면, 그 설명은 욕망의 표면만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들뢰즈는 욕망을 어떤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충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들뢰즈는 욕망을 “기계적”이라고 표현한다. 욕망이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고, 서로 다른 기계들 사이를 흐르면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때 사람의 손가락은 무심코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하고, 사람의 눈은 무한한 이미지 흐름을 따라간다. 사람은 스토리를 넘기면서 타인의 하루를 훑고, 릴스를 보며 짧은 쾌락과 웃음을 소비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욕망은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기계와 접속한다. 들뢰즈가 본다면, 인스타그램은 욕망하는 기계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조립체이자, 욕망 흐름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절단하는 장치로 보일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을 따라가면서,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이 인스타그램에도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차근히 답해 보려 한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으로 다시 보는 인스타그램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이란 무엇인가

결핍으로서의 욕망 vs 생산으로서의 욕망

사람은 보통 욕망을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이해한다. 이때 욕망은 결핍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돈이 부족해서 돈을 원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을 원하고, 인정이 부족해서 인정을 원한다. 이 관점에서 욕망은 항상 “마이너스 상태”를 메우려는 운동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런 이해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들뢰즈는 욕망이 본질적으로 생산하는 힘이라고 주장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이미 무엇인가를 만들고, 연결하고, 조립하는 적극적인 에너지다.

들뢰즈는 욕망을 생산이라고 부를 때, 욕망이 단순히 마음속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세계를 바꾸는 힘이라고 본다. 사람의 욕망은 새로운 직업, 새로운 관계, 새로운 도시,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낸다. 욕망은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래서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의 언어로 설명하는 대신, 생산의 언어로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이 생산한다는 관점이 기계적 욕망이라는 표현과 연결된다.

기계와 기계의 접속, 흐름, 절단

들뢰즈는 욕망을 설명할 때 일부러 ‘기계’라는 다소 차가운 단어를 사용한다. 들뢰즈에게 기계는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람의 몸, 사람의 뇌, 기업, 가족, 도시, 미디어, 플랫폼 등 다양한 것이 모두 기계가 될 수 있다. 기계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기계와 접속한다. 예를 들어 입이라는 기계는 음식이라는 기계와 연결되고,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사람의 손과 눈, 네트워크와 연결된다. 이 연결이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기계적 욕망의 기본 구조다.

기계가 서로 연결되면, 그 사이를 어떤 ‘흐름’이 지나간다. 물질의 흐름, 정보의 흐름, 이미지의 흐름, 돈의 흐름 등이 대표적이다. 욕망은 바로 이런 흐름이기도 하고,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에 기계는 흐름을 계속 흘려보내지 않고, 중간에서 잘라내기도 한다. 사람은 피드를 내리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추고, 어떤 이미지를 저장하거나 좋아요를 누른다. 이 행위는 흐름의 작은 절단이다. 들뢰즈는 욕망을 “기계의 접속, 흐름의 생산, 흐름의 절단”이라는 삼각 구조로 파악한다. 이 구조를 기억하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도 하나의 거대한 욕망 기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구조를 들뢰즈의 욕망 기계로 읽기

계정, 피드, 스토리, 릴스의 기계적 조립

인스타그램을 들뢰즈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스타그램은 여러 종류의 기계가 조립된 하나의 복합 기계처럼 보인다. 사람은 먼저 계정을 만든다. 계정은 하나의 작은 기계다. 계정 기계는 프로필 사진, 자기소개 문구, 링크, 하이라이트 아이콘, 게시물들의 배열로 구성된다. 이 계정 기계는 다른 계정 기계와 팔로우, 팔로워 관계로 연결된다. 이렇게 계정과 계정이 서로 접속하면서, 소셜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기계 조립체가 만들어진다.

피드도 하나의 기계다. 피드 기계는 플랫폼이 선택한 순서에 따라 이미지와 텍스트, 영상들을 사람에게 흘려보낸다. 사람은 피드 기계와 접속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스크롤을 내린다. 손가락 기계, 눈 기계, 뇌 기계가 피드 기계와 동시에 작동한다. 스토리는 또 다른 기계다. 스토리 기계는 24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을 걸어, 욕망의 리듬을 조절한다. 사람은 스토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서 자주 들어가 보게 된다. 릴스 기계는 짧고 강렬한 영상의 흐름을 제공하면서, 사람의 집중 시간을 잘게 쪼갠다.

이렇게 계정, 피드, 스토리, 릴스, DM, 쇼핑 기능 같은 요소들은 서로 분리된 기능이 아니라, 욕망을 계속 작동시키도록 설계된 기계들의 집합이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인스타그램은 욕망하는 기계들의 조립체이고, 사용자는 이 조립체에 자신의 몸과 시간을 접속시키는 존재다.

해시태그, 필터, 리그램이 만드는 기계적 연결

해시태그와 필터, 리그램(공유) 기능도 기계적 욕망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해시태그 기계는 서로 다른 게시물을 하나의 의미 흐름으로 묶는다. 사람은 해시태그를 클릭하면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일상까지도 쉽게 침투한다. 이때 사람의 욕망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새로운 정보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해시태그는 욕망의 경로를 만들어주는 안내판이면서, 동시에 욕망을 집단적으로 모으는 기계 역할을 한다.

필터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조율하는 기계다. 필터 기계는 얼굴을 더 매끄럽게 만들고, 피부를 더 하얗게 만들고, 배경을 더 감각적으로 바꾼다. 필터는 단순한 효과를 넘어서, “이렇게 보이는 얼굴이 더 예쁘다”, “이런 색감의 사진이 더 세련됐다”라는 암묵적 기준을 만들어낸다. 사람은 필터 기계에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맞춰가면서, 스스로를 특정한 코드에 맞게 조정한다.

리그램과 공유 기능은 욕망의 흐름을 증폭시키는 기계다. 사람은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게시물을 자기 스토리에 옮기고, DM으로 친구에게 보낸다. 이 공유 행위는 욕망의 흐름을 수평으로 확장한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관점에서 보면, 해시태그, 필터, 공유 기능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욕망 생성의 핵심 장치다. 이 장치들이 있기에 인스타그램은 개인의 욕망을 고립시키지 않고, 서로 연결된 거대한 흐름으로 만든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과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결합

추천 알고리즘과 무한 스크롤의 회로

인스타그램의 핵심에는 알고리즘 기계가 자리 잡고 있다. 알고리즘 기계는 사람의 클릭, 머무른 시간, 좋아요, 댓글, 저장, 팔로우 같은 행동을 모두 데이터로 수집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의 욕망을 예측하고 유도하는 새로운 피드를 구성한다. 표면적으로 사람은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이 잘 떠서 편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알고리즘 기계는 욕망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장치다.

무한 스크롤 기능은 기계적 욕망과 특히 잘 맞는 구조다. 사람은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를 중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음 게시물이 바로 이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의 뇌는 “여기까지”라는 자연스러운 끊김을 경험하지 못한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기계는 흐름을 중간에서 잘라내면서 동시에 흐름을 이어가게 만든다. 무한 스크롤은 미세한 쾌락의 흐름을 계속 이어지게 만들고, 사람이 지치기 전까지 욕망 기계가 작동하도록 만든다.

알고리즘과 무한 스크롤이 결합하면, 욕망의 자동 생산 회로가 만들어진다. 사람은 잠깐만 보려고 했던 인스타그램 안에서 몇십 분, 어떤 날은 몇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스스로 놀라곤 한다. 사람은 “내가 의지가 약해서 그래”라고 자책하지만,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거대한 알고리즘 기계와 접속된 상태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부품에 가깝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력만이 아니라, 욕망을 자동으로 생산하도록 설계된 구조 자체에 있다.

데이터화된 욕망과 광고 기계

알고리즘 기계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욕망을 데이터화한다. 사람의 관심사는 해시태그와 검색어,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 팔로우한 계정을 기준으로 숫자와 범주로 정리된다. 이 데이터는 광고 기계와 곧바로 연결된다. 광고 기계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상품에 관심을 가질지, 어느 정도 가격을 견딜지 추정한다. 그리고 광고 기계는 사람에게 가장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 이미지를 정확한 타이밍에 보여준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적용하면, 데이터화된 욕망은 욕망의 또 다른 형태다. 욕망은 단지 마음속에 있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속 행(row)과 열(column), 그래프와 지표의 형태로도 존재하게 된다. 이 데이터 욕망은 광고 기계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생산을 낳는다. 광고 기계는 욕망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플랫폼은 그 이미지를 사람의 피드 속에 자연스럽게 섞어 넣는다. 사람은 광고를 보고 무언가를 구매하고, 그 구매는 다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든다. 이 순환 구조는 기계적 욕망의 자동 생산 회로를 한층 더 강화한다.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과 인스타그램 중독·비교의 감정

‘좋아요’ 숫자와 인정 욕망의 자동 생산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직관적인 지표는 좋아요 숫자다. 사람은 자신의 게시물에 붙은 좋아요 숫자를 무심코 확인한다. 사람은 숫자가 많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숫자가 적으면 괜히 초라함을 느낀다. 이 감정은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과 깊이 연결된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원래부터 사람 안에 있던 심리이지만, 인스타그램은 이 욕망을 숫자로 측정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고, 실시간으로 피드백되는 구조 속에 집어넣는다.

좋아요 버튼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인정 욕망 기계의 스위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자신도 언젠가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감정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 상호 작용 속에서 인정 욕망은 자동으로 순환한다. 들뢰즈식 표현을 사용하면, 좋아요 기계는 욕망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집약하면서, 그 흐름을 다시 숫자라는 코드로 절단하는 장치다. 이 장치 덕분에 인스타그램은 사람들의 인정 욕망을 끊임없이 활성화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비교, 열등감, 자기 브랜딩과 탈진의 메커니즘

인스타그램 사용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비교의 감정이다. 사람은 피드 속에서 타인의 여행, 직장, 연애, 몸매, 집, 취미를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그 이미지들과 비교하게 된다. 사람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나는 왜 저렇게 못 살까”라는 열등감을 느낀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관점에서 보면, 이 비교는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플랫폼이 욕망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반영한다.

인스타그램 기계는 ‘평범한 일상’보다는 ‘보여줄 만한 장면’을 선별하도록 사람을 유도한다. 사람은 자신의 피드에서 실패, 무기력, 지루함을 잘 드러내지 않고, 대신 여행, 맛집, 성공, 화장한 얼굴, 정리된 책상 같은 이미지를 주로 올린다. 이렇게 필터링된 이미지들이 모이면, 피드는 매우 비현실적인 삶의 축소판이 된다. 사람은 이 축소판을 기준으로 자신의 현실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비교, 열등감, 불안이 늘어난다.

또한 인스타그램은 사람에게 ‘자기 브랜딩’의 요구를 강하게 건넨다. 사람은 자신의 계정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사람은 콘텐츠 주제를 정하고, 피드 전체 색감을 맞추고, 실제 성격보다 더 재미있거나, 더 성숙하거나, 더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려 한다. 이 자기 브랜딩 노력은 처음에는 즐거운 놀이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와 탈진을 부른다. 욕망하는 기계가 과열된 상태로 계속 돌아가는 셈이다.

들뢰즈 철학으로 상상하는 건강한 인스타그램 사용 전략

소비 피드에서 실험 피드로 전환하기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단지 비판에만 쓰지 않고, 새로운 사용 전략을 상상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들뢰즈는 욕망을 파괴적인 힘으로만 보지 않고, 새로운 삶을 발명하는 힘으로도 보았다. 이 관점을 인스타그램에 적용하면,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단순히 소비하고 비교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은 실험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바꿔 볼 수 있다.

사람은 우선 피드 사용 방식을 점검해 볼 수 있다. 사람은 지금까지 주로 무엇을 소비해 왔는지, 어떤 계정이 자신의 기분을 가볍게 만들고, 어떤 계정이 자신을 반복적으로 우울하게 만드는지 기록해 볼 수 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은 피드 구성을 재조정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계정의 팔로우를 줄이고, 창작 아이디어를 자극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계정을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피드를 조정하는 행위는 욕망 기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욕망 기계의 배치를 직접 변형하는 작업이다.

혼자 쓰는 비가시적 공간 만들기

들뢰즈는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작은 탈주선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이런 탈주선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모든 게시물을 공개 계정에 올릴 필요가 없다. 사람은 자신만 보는 계정이나 비공개 스토리 목록을 만들어, 실험적인 이미지를 올리거나 가공되지 않은 감정을 기록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좋아요 숫자나 외부 시선에 덜 구속되는 영역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다른 기계들, 예를 들어 독서, 글쓰기, 음악, 산책과 접속시키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사람은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사진과 함께 기록하거나, 산책 중에 떠오른 생각을 간단히 적어두는 식으로 인스타그램을 기억의 아카이브 기계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사용하면, 인스타그램은 비교와 소비의 장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관심사를 천천히 탐색하는 실험 노트가 된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떠올리면, 사람은 욕망 기계를 파괴할 수는 없지만, 욕망 기계를 다른 방식으로 조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으로 본 인스타그램의 두 얼굴

들뢰즈가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욕망의 구조

지금까지 이 글은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이라고 보았고, 욕망을 생산하는 존재를 기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 관점에서 인스타그램은 욕망하는 기계들이 조립된 거대한 장치이며, 사람은 이 장치와 끊임없이 접속하고 분리되는 하나의 기계다.

인스타그램은 계정, 피드, 스토리, 릴스, 해시태그, 필터, 공유 기능, 알고리즘, 광고 기계 등 여러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사람의 관심과 시간을 붙잡고, 인정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비교와 중독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적용하면, 이런 구조는 개인의 성격 탓이나 의지력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욕망을 자동으로 생산하도록 설계된 기계적 배치다. 사람은 이 배치 속에서 어느 정도 조종되지만, 동시에 그 배치를 인식하는 순간, 작은 변형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인스타그램의 해방적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기

들뢰즈의 관점에서 인스타그램은 단지 위험한 도구만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은 새로운 만남과 정보, 영감과 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인스타그램 덕분에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사람과 쉽게 연결되고,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에게 인스타그램은 자신의 예술, 글, 사진, 작업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인스타그램은 분명 새로운 욕망과 삶의 방식이 태어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은 동시에 소비주의, 자기 브랜딩 강박, 비교와 열등감을 강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은 욕망 기계를 쉼 없이 작동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은 사람에게 이 양면성을 동시에 보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거나,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어떻게 사용해야 내가 덜 지치고, 더 주체적으로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 자체가 이미 기계적 욕망의 배치를 재구성하려는 작은 실천이다.


들뢰즈가 인스타그램 세대에게 던지는 질문

들뢰즈 철학이 인스타그램 사용자에게 남기는 메시지

들뢰즈가 직접 인스타그램을 본 적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들뢰즈가 남긴 개념들은 오늘의 인스타그램 현실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잘 들어맞는 부분이 많다. 들뢰즈의 기계적 욕망 개념은 인스타그램을 단순한 앱이 아니라, 욕망을 생산하고 배치하고 관리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보게 만든다. 이 관점에 서면,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피드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구성한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내 손가락과 눈과 뇌는 어떤 기계와 접속해 있는가?”, “내가 나답다고 느끼는 이 이미지와 문장은 진짜 내 욕망에서 나왔는가, 아니면 알고리즘과 타인의 시선을 미리 계산해서 만들어낸 결과인가?” 이런 질문들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질문들은 단지 사람이 자신과 인스타그램 사이의 관계를 더 의식적으로 만들도록 돕는다.

기계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틈을 만드는 태도

들뢰즈는 사람에게 기존 체계 밖으로 완전히 탈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사람들이 이미 여러 기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스타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은 일, 인간관계, 정보 수집, 취향 공유를 위해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 태도와 사용 방식을 조금씩 바꾸려는 시도다.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지금 이 접속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고 한번만 더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피드를 조정하고, 사용 시간을 조절하고, 기록의 방식을 바꾸는 작은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은 거창해 보이지 않지만,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작은 차이가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낸다. 기계적 욕망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사람은 그 욕망 기계를 조금 더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재조립할 수 있다.

이 글이 인스타그램을 켜는 손동작 사이에 잠깐 들어오는 작은 ‘틈’이 될 수 있다면,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욕망은 단지 인스타그램을 비판하는 개념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삶을 다르게 설계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오늘도 인스타그램을 열겠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그 화면을 바라볼 수 있다. 바로 그 차이가 들뢰즈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선물 중 하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