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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 & 현대 사유

들뢰즈와 스피노자 – 자유의 새로운 정의

by 둥둥팍 2025. 12. 5.

자유와 연결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중첩된 실루엣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만날 때 자유가 달라진다

이 글은 질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함께 그려낸 ‘자유’ 개념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직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유를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 “간섭받지 않는 것”, “선택지가 많은 상태”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런 통념을 기초부터 뒤집습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철학자”라고 부르며, 자유를 새롭게 정의한 사상가로 읽어냅니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이해하고, 그 능력을 실제로 발휘하는 상태로 보았습니다.

이 글은 먼저 들뢰즈가 어떻게 스피노자의 철학을 읽었는지 정리합니다. 이 글은 실체, 양태, 코나투스라는 스피노자의 개념이 들뢰즈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그리고 들뢰즈가 왜 스피노자를 ‘자유의 철학자’로 불렀는지 설명합니다. 그다음 이 글은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전통적인 자유 개념(“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을 어떻게 비판했고, 그 대신 어떠한 자유 개념(“할 수 있는 것을 넓혀 가는 자유”)을 제시했는지 살펴봅니다. 이어서 이 글은 필연성과 자유, 욕망과 정동, 현대사회와 자유의 문제를 들뢰즈·스피노자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독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질문과 실천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글은 철학 교과서식 요약이 아니라, 실제 삶과 고민에 연결된 철학적 안내서를 목표로 삼습니다. 이 글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 대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내 능력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나는 어떤 관계와 환경 속에서 더 자유로워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이 글은 키워드로는 들뢰즈, 스피노자, 자유, 코나투스, 정동, 능력, 현대사회 등을 중심에 두고, 검색엔진에 노출되기 좋은 구조와 함께, 실제 독자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촘촘하게 담아내려 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던지는 질문, “자유는 착각인가, 능력인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유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가집니다. 사람은 한편으로 “나는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 “현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사람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내 선택이 맞는가?”를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유를 특권처럼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부담과 책임의 무게로 느낍니다.

여기에서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스피노자는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들뢰즈는 이 말을 이어받으면서, 자유를 “착각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들뢰즈에게서 자유는 “아무도 나를 막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원인과 관계, 정동을 더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통해 내 능력을 확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 서론에서 이 글은 세 가지 핵심 질문을 세웁니다. 첫째,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통해 읽어낸 자유는 왜 기존 자유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른가? 둘째, 들뢰즈·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왜 오늘의 디지털 시대, 관계 과잉의 시대, 불안의 시대에 유효한가? 셋째, 사람은 이 철학적 자유 개념을 자신의 일상과 선택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이 글은 본론에서 이 질문에 차례대로 답하면서,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사유를 우리 삶의 언어로 옮겨보려 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재구성한 자유의 철학

1. 들뢰즈가 읽은 스피노자: 자유 개념의 전환점

1-1. 들뢰즈가 본 스피노자의 핵심 개념: 실체, 양태, 코나투스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읽을 때,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단순한 윤리학자가 아니라 존재론과 정치학, 심리학을 동시에 다시 쓴 철학자로 보았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출발점이 되는 것은 ‘실체’와 ‘양태’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무한한 존재이고, 양태는 그 실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개별 존재들입니다. 사람, 나무, 도시, 생각, 감정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실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 양태입니다.

들뢰즈는 이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개인을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하나의 양태’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세계로부터 분리된 섬이 아니라, 세계와 얽혀 있는 특정한 표현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자유는 세계와 단절된 독립성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된 방식이 얼마나 풍부하고 능동적인지와 관련됩니다. 이때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코나투스는 각 존재가 자신을 유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키려는 노력, ‘지속하려는 힘’을 뜻합니다.

들뢰즈에게 코나투스는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닙니다. 들뢰즈는 코나투스를 “각 존재가 자신의 방식으로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려는 욕망”으로 읽습니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늘리기 위해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언어를 배우고, 관계를 맺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자신의 능력을 확장합니다. 들뢰즈는 이 움직임 속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봅니다. 자유는 코나투스가 억눌리지 않고, 이해와 적절한 만남을 통해 성장해 가는 상태입니다.

1-2. 들뢰즈가 재해석한 스피노자 자유: 의지가 아닌 이해의 문제

전통적으로 많은 철학자들은 자유를 의지의 문제로 이해했습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고 설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 설명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고, 들뢰즈는 이 지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스피노자는 사람의 의지가 완전히 자율적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원인과 이유, 감정과 욕망, 상황과 관계의 복잡한 얽힘 속에서 형성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자유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선택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었는지 충분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는 “원인 없이 선택하는 힘”이 아닙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는 “자신을 움직이는 원인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자신의 능동성을 높이는 상태”입니다. 들뢰즈는 이 자유 개념을 “활동적 정동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사람의 행동이 외부에 끌려가는 수동적 정동이 아니라, 이해와 인식에서 비롯된 능동적 정동일 때, 사람은 더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분노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을 수 있지만, 스피노자와 들뢰즈 관점에서는 그 사람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감정에 지배당했고, 그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상처와 어떤 기대와 결합해 있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행동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은 더 자유롭습니다. 자유는 그래서 감정의 유무가 아니라, 이해의 깊이와 연결된 능력의 문제입니다.

2.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 ‘하고 싶은 대로’에서 ‘할 수 있는 대로’로

2-1.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비판한 전통적 자유 개념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비판한 자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외부 간섭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원인에도 구속되지 않는 초월적 의지로서의 자유”입니다. 첫 번째 개념은 자유를 단순히 규칙의 부재, 억압의 부재로 이해합니다. 두 번째 개념은 마치 사람의 의지가 진공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상상합니다. 스피노자는 이 두 가지 이해를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보았고, 들뢰즈는 그 비판을 현대적으로 확장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환경과 타인, 역사와 제도, 기술과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간섭받지 않는 자유”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또한 사람의 선택은 과거의 경험, 배운 가치, 현재의 정동 상태에 의해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런 현실을 회피하면서 추상적인 ‘절대 자유’를 말하는 대신, 실제 삶에서 가능한 자유를 말하려 했습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나는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가 아니라, “나는 나를 움직이는 힘들을 이해하고, 그 힘들 속에서 나의 능력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입니다. 사람은 완전히 구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자신이 놓인 조건을 이해하고, 그 조건 안에서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이 들뢰즈·스피노자 자유 이론의 핵심입니다.

2-2. 들뢰즈와 스피노자 자유 개념의 핵심: 능력과 역량의 확대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자유를 “능력(capacity)의 확대”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능력은 단순한 스펙이나 스킬이 아닙니다. 이 능력은 내가 무엇과 만날 수 있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버틸 수 있는지, 어떤 정동을 감당하고 변형할 수 있는지, 어떤 생각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포함합니다. 스피노자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의 자유는 사람의 코나투스가 다른 존재들과 만나면서 증가하는 정도와 연결됩니다.

들뢰즈는 이 자유를 “더 많이 영향을 주고, 더 많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고립된 사람이 아니라, 더 풍부하게 연결된 사람입니다. 다만 그 연결은 사람을 소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힘을 키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좋은 스승, 좋은 동료, 좋은 텍스트, 좋은 환경과 만날 때, 사람의 이해와 정동의 폭은 넓어집니다. 이 확장이 바로 자유의 증대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유는 “제약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제약과 구조 안에서 내 능력을 가장 잘 펼치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완전히 아무 규칙도 없는 환경에서 오히려 방향을 잃고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규칙과 리듬, 자신에게 맞는 관계와 일을 찾을 때, 더 자유롭게 느낍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러한 역설을 자유 이론의 중심에 놓습니다.

2-3. 들뢰즈 정동 이론과 스피노자 감정론의 연결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 이해에서 정동(affect)과 감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단순히 개인의 심리상태가 아니라, 몸의 능력이 증대되거나 감소하는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기쁨은 사람의 능력이 확장될 때 동반되는 정동이고, 슬픔은 사람의 능력이 축소될 때 동반되는 정동입니다. 들뢰즈는 이 감정론을 정동 이론으로 발전시킵니다.

들뢰즈에게 자유는 기쁨의 정동과 깊이 연결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에게서 기쁨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내가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새로운 개념을 이해했을 때 느끼는 환한 감정, 고된 훈련 끝에 몸이 새로운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끼는 뿌듯함, 좋은 대화를 통해 생각이 확장되었다고 느낄 때의 고양감은 모두 자유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정동입니다.

반면, 반복되는 비교 속에서 무가치함을 느끼는 감정, 소진된 상태에서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는 감정, 타인의 시선에만 매달리는 불안은 사람의 능력을 줄입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관점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보다 정동의 지표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나는 지금 어떤 만남과 환경 때문에 힘이 줄어들고 있는가?”를 감정을 통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감지 능력은 자유를 향한 중요한 감각입니다.

3.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와 필연성

3-1. 스피노자 필연성의 세계, 들뢰즈가 본 자유의 틈

스피노자는 세계를 필연성의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원인과 이유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필연성의 관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면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들뢰즈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습니다. 들뢰즈는 오히려 스피노자의 필연성 개념을 통해 더 성숙한 자유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들뢰즈는 자유를 필연성의 부정에서 찾지 않습니다. 들뢰즈는 자유를 필연성의 이해와 수용, 그리고 그 안에서의 능동성에서 찾습니다. 세계가 필연적으로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무력감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사람은 자신과 세계를 움직이는 원인을 더 잘 알수록,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이해가 자유의 공간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의 성격, 습관, 과거의 상처, 현재의 환경이 자신의 선택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영향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영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될 때, 사람은 조금 더 다른 선택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 작은 차이가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는 필연성과 싸워 이기는 절대 권력이 아니라, 필연성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는 능력입니다.

3-2.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본 운명, 선택, 책임

사람은 종종 “이건 운명이야”라는 말로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포기합니다. 사람은 때때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사람은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과도하게 책임지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합니다.

스피노자와 들뢰즈 관점에서 사람의 삶은 구조와 선택, 필연성과 능동성의 결합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많은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조건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더 적절한 경로를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책임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능한 책임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책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실제로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런 현실적인 책임과 자유를 강조합니다. 이 강조는 사람에게 과도한 죄책감 대신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사람은 운명을 탓하거나 스스로를 전능한 존재처럼 과장할 필요 없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자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유

4-1.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본 디지털 시대의 욕망과 자유

디지털 시대에 사람의 자유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한되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열립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얻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사람은 알고리즘과 플랫폼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통제를 받습니다. 사람은 끝없는 선택지 앞에서 피로를 느끼고,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신을 평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말은 때로 공허한 주문처럼 들립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관점에서 사람은 디지털 환경을 자유의 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디지털 환경은 새로운 만남과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이 환경과 맺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사람은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할 수도 있고, 자신이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떤 관계를 맺을지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는 후자의 방향에서 자랍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사람에게 “내가 지금 어떤 환경과 욕망-기계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묻도록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디지털 습관, 온라인 관계, 정보 소비 방식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을 소모시키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런 점검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능력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이 사용 방식이 나를 더 이해하게 만들고 있는가?”, “이 만남이 나를 더 기쁘게 하고 능동적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자유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4-2.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제안하는 ‘자유로운 관계 맺기’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자유를 개인 내부의 상태로만 보지 않습니다. 두 철학자는 자유를 관계의 질과도 연결합니다. 스피노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때로는 상호 능력을 키우는 기쁨의 원천이 되고, 때로는 서로의 능력을 줄이는 슬픔의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들뢰즈는 이 분석을 정동 이론과 정치철학으로 확장했습니다.

자유로운 관계는 서로를 통제하거나 소유하려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능력을 키워주는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사람은 상대를 자기 기분을 해결해 줄 도구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독립적인 코나투스를 가진 존재로 존중합니다. 사람은 상대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 관계 안에서 사람의 능력은 확장되고, 사람의 정동은 더 기쁨 쪽으로 이동합니다.

반대로 관계가 서로를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될 때, 사람은 점점 덜 자유로워집니다. 사람은 상대의 시선과 기대에 갇히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게 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이런 관계의 문제를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기보다, 관계의 구조와 배치를 바꾸라고 제안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자주 듣고 있는지, 어떤 정동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관찰은 자유를 향한 중요한 시작입니다.

5. 실천: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법

5-1. 들뢰즈·스피노자식 자기 성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을 일상에서 실천하려면, 사람은 자기 성찰의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사람은 보통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질문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이 질문은 자기 비난을 불러오고, 사람의 능력을 축소시키는 정동을 강화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사람에게 다른 질문을 제안합니다. 이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게 되고 싶은가?”입니다.

사람은 이 질문을 구체적인 영역으로 내려보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몸, 감정, 생각, 관계, 일, 창작 등 여러 영역에서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나는 하루 10분은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직 어렵다”, “나는 낯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용기는 있다”처럼 자신의 현재 능력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부족함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입니다.

이 지도 위에서 사람은 “나는 어떤 방향의 능력을 늘리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관계에서 더 솔직해지고 싶은지, 일에서 더 창의적이고 싶은지, 몸에서 더 자유롭고 싶은지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 탐색은 이미 자유의 한 형태입니다. 사람은 더 이상 추상적인 “자유롭게 살고 싶다”라는 말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능력 확장의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5-2. 들뢰즈·스피노자 관점으로 관계·일·시간 다시 짜기

자유를 능력과 배치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관계, 일, 시간 사용 방식을 다시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작은 조정부터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관계는 나를 더 능동적으로 만들고, 어떤 관계는 나를 수동적으로 만드는가?”, “어떤 일은 나의 코나투스를 자주 느끼게 하고, 어떤 일은 나를 소모시키는가?”, “어떤 시간대에는 내가 더 창의적이고, 어떤 시간대에는 무의식적으로 피드를 스크롤하고 있는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관찰을 바탕으로 사람은 몇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반복적으로 소진시키는 대화와 공간을 줄이고, 자신을 확장시키는 대화와 활동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 중 가장 에너지가 높은 시간대를 가장 중요한 일에 배치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능력을 키우는 활동(학습, 창작, 운동, 깊은 휴식)을 일정에 먼저 기록하고, 그 주위를 다른 업무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재배치는 들뢰즈와 스피노자 자유 이론의 직접적인 실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놓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구조를 조정합니다. 사람은 더 이상 자유를 “언젠가 올 거대한 전환”으로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더 할 수 있는 선택을 찾아냅니다. 이 작은 변화들이 모일 때, 사람의 자유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체감되는 능력으로 바뀝니다.

5-3.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의 훈련: 작은 선택의 연습

들뢰즈와 스피노자 관점에서 자유는 한 번에 얻는 상태가 아니라, 반복적인 훈련과 실험을 통해 길러지는 역량입니다. 사람은 아주 작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이 자유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즉각적인 감정에 끌려가려는 순간에 잠시 멈추고, “지금 이 감정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감정이 나의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비판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방어하거나 자책하기보다는, 그 비판 속에 실제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는지 차분히 분리해 보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기력함을 느낄 때, “나는 아무것도 못해”라고 단정하는 대신, “나는 지금 무엇부터 할 수 있는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들의 반복이 곧 자유의 훈련입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자유를 완벽함의 기준으로 보지 않습니다. 두 철학자는 자유를 “조금 더 능동적으로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 더 나와 타자의 능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봅니다. 사람은 오늘 그 방향으로 한 발만 옮겨도, 어제보다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다시 묻는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글은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함께 다시 쓴 자유 개념을 살펴보고, 그 개념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자유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자유를 “할 수 있는 것을 넓혀 가는 것”, “나와 세계를 이해하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는 자유를 추상적인 이상에서 구체적인 능력으로 끌고 내려옵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디지털 시대, 비교의 시대, 불안의 시대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사람은 무한한 선택지 앞에서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고,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합니다. 이 상황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말은 쉽게 공허해집니다. 그러나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사람에게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너는 누구와, 무엇과 만날 때 더 기쁘고 능동적인가?”, “너는 어떤 배치 속에서 더 자유로워지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자유의 일부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전능한 주체로 상상하지 않아도 되고,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필연성과 조건 속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 사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이 언어를 배운 사람은, 자유를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길러야 할 역량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철학으로 나만의 자유 정의하기

마무리에서 이 글은 독자가 들뢰즈와 스피노자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자유 정의를 만들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더 이상 누군가가 내려준 자유의 정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관계, 욕망, 상처, 기쁨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유의 정의를 스스로 구성할 권리가 있습니다.

독자는 지금 이 순간, 간단한 문장으로 자신의 자유를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자는 “나에게 자유란, 내 능력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끼는 상태다”, “나에게 자유란,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보다 나를 살리는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나에게 자유란, 두려움이 있어도 중요한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다”와 같이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문장은 하나의 시작일 뿐입니다.

들뢰즈와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 시작을 응원합니다. 두 철학자는 사람에게 “너는 이미 하나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되어 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자유 정의도 고정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삶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배움을 얻을 때마다 자유의 정의를 조금씩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이 변화하는 정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말한 자유에 가까운 삶일 것입니다.

이 글이 독자의 그런 여정에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자는 철학 책을 덮는 순간에도, 자유에 대한 사유를 멈출 필요가 없습니다. 독자는 오늘 자신의 하루 속에서, 아주 작은 한 선택이라도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말한 자유의 방향으로 옮겨 볼 수 있습니다. 그 한 걸음이 바로, 새로운 자유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