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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 & 현대 사유

욕망은 억제해야 할 감정인가? 들뢰즈의 욕망 이론으로 보는 현대사회

by 둥둥팍 2025. 12. 5.

다양한 욕망의 상징으로 둘러싸인 인물의 초현실적 이미지

들뢰즈 욕망 이론으로 욕망을 다시 묻기

사람은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욕망을 경고받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욕망을 너무 드러내면 위험하다”, “욕망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어른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은 욕망을 다루는 문제를 도덕과 실패의 문제로 묶어 두기 쉽습니다. 그러나 질 들뢰즈의 욕망 이론은 이 익숙한 상식을 정면에서 흔듭니다. 들뢰즈는 욕망을 억제해야 할 감정으로 보지 않고, 세계를 만들어 내는 힘, 관계를 구성하는 에너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열어젖히는 생산적인 흐름으로 이해합니다.

이 글은 “욕망은 억제해야 할 감정인가?”라는 질문을 들뢰즈 욕망 이론을 통해 다시 묻습니다. 이 글은 먼저 들뢰즈 욕망 이론이 전통적인 욕망 이해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합니다. 그 다음 이 글은 현대 소비사회, SNS 중심의 인정 구조, 자기계발 담론, 사랑과 관계의 패턴 속에서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뢰즈 관점으로 분석해 봅니다. 이어서 이 글은 “욕망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욕망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할 것인가”라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독자가 일상에서 욕망을 관찰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글은 철학을 어렵게 소개하기보다, 들뢰즈 욕망 이론을 현대 사회와 개인 삶에 직접 연결해 보는 안내서를 지향합니다.

욕망을 두려워하는 사회와 들뢰즈의 반문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욕망을 양가적으로 대합니다. 한편으로 사람은 욕망을 인정하고 활용하라고 배우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욕망을 숨기고 통제하라고 압박받습니다. 광고는 사람에게 끝없이 욕망하라고 부추기고, 도덕은 사람에게 욕망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일상 대화에서도 “욕심을 좀 버려야 한다”와 “욕심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람은 이 상반된 메시지 속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인정하면 불안하고, 욕망을 부정하면 공허합니다.

질 들뢰즈는 이런 상황을 단순한 심리 갈등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들뢰즈는 사회가 욕망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욕망을 승인하고, 어떤 욕망을 금지하는지에 주목합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개인 마음속의 감정이라기보다, 사회 구조와 관계 망 속에서 흐르는 힘입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욕망을 억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이분법을 넘어, “누가 욕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어떤 욕망이 허용되고, 어떤 욕망이 왜 억압되는가”를 묻게 만듭니다.

이 서론에서 이 글은 세 가지 문제의식을 세웁니다. 첫째, 들뢰즈 욕망 이론은 왜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으로 이해하는가. 둘째, 현대사회는 왜 동시에 욕망을 자극하고 관리하려 드는가. 셋째, 개인은 이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 세 질문을 중심으로 본론을 전개합니다. 독자는 이 글을 통해 욕망을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구조이자, 조정 가능한 에너지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들뢰즈의 욕망 이론으로 보는 현대사회의 구조

1. 들뢰즈 욕망 이론의 핵심 이해

1-1. 들뢰즈가 본 욕망: 결핍이 아닌 생산

전통적인 철학과 심리학은 욕망을 자주 결핍과 연결해 이해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행동한다고 설명되었습니다. 이런 이해 속에서 욕망은 항상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전제를 거부합니다.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 연결, 창조의 힘으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텅 빈 그릇처럼 채워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흘러가고 있는 욕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단순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닙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제도, 사람과 환경을 서로 연결하고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때, 그 욕망은 책상, 노트북, 시간, 조용한 공간, 읽었던 책들, 기억 속 장면들과 연결됩니다. 욕망은 이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면서 하나의 텍스트를 생산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과정을 단순한 심리 충동이 아니라, 세계를 재구성하는 생산 작업으로 봅니다.

이렇게 욕망을 보면, 사람은 더 이상 욕망을 “채워지지 않으면 불행한 빈자리”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욕망을 삶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을까?”라는 자기비난 대신, “내 욕망은 지금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는가?”, “내 욕망은 무엇과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바로 이런 질문 전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1-2. 들뢰즈 욕망 기계와 배치 개념 이해

들뢰즈 욕망 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는 ‘욕망 기계’입니다. 들뢰즈는 욕망을 기계에 비유하면서, 욕망이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연결되고 분리되는 장치들의 조합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욕망을 느낄 때 혼자서만 욕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 이미지, 물건, 제도, 기술과 함께 욕망합니다. 들뢰즈는 이 복잡한 얽힘을 ‘배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배치는 욕망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체적인 배열, 관계의 구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은 혼자 떠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이 욕망은 학교 시스템, 경쟁 구조, 가족의 기대, 비교 문화, SNS에서 보이는 타인의 삶, 경제 상황과 긴밀하게 묶여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에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하나의 배치 안에서 욕망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욕망이 나쁘다, 좋다”라고 말하기 전에, “욕망이 어디에서, 어떤 배치 속에서, 어떤 방향을 향해 작동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배치 개념을 이해하면, 사람은 욕망을 단순히 억누르거나 해방하는 문제가 아니라, 재배치하고 조정하는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둘러싼 환경, 관계, 도구를 점검하면서, 어떤 배치가 자신을 소진시키고, 어떤 배치가 자신을 살리는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렇게 욕망 기계와 배치 개념을 통해, 욕망을 구조적이고 실천적인 분석 대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2. 들뢰즈 욕망 이론과 현대 소비사회

2-1. 들뢰즈 시선에서 본 욕망과 소비주의

현대 소비사회에서 사람은 욕망과 소비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사람은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욕망이라고 부르고, 광고와 마케팅은 이런 욕망을 끝없이 자극합니다. 그러나 들뢰즈 욕망 이론은 욕망과 소비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소비는 욕망이 흐르는 한 방식일 뿐, 욕망 전체가 아닙니다. 들뢰즈는 오히려 욕망이 소비주의에 포획될 때, 욕망의 생산성과 창조성이 축소된다고 봅니다.

사람이 물건을 사려는 욕망을 느낄 때, 그 욕망은 종종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따라갑니다. 사람은 “이 물건을 가지면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떠올리며 지갑을 엽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상황을 욕망의 생산성이 아니라, 욕망의 중개와 복제로 이해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직접 세계를 만드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기호와 이미지 사이에서 겉돌게 됩니다. 이때 사람은 실제로는 욕망하고 있지만, 욕망이 자신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펼쳐지지 못합니다.

들뢰즈 시선에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사고 싶은가”가 아니라, “욕망이 어떤 새로운 연결과 생산을 만들고 있는가”입니다. 사람은 소비를 통해서도 새로운 배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특정 도구를 구입해 창작 활동을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시에, 단지 이미지를 따라 물건을 소유하는 반복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람에게 이러한 차이를 감지하라고 요구합니다. 사람은 “나는 지금 나의 욕망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2-2. 들뢰즈 욕망 이론으로 읽는 SNS와 인정 욕망

SNS 시대에 사람의 욕망은 인정과 연결됩니다. 사람은 ‘좋아요’ 숫자, 댓글, 팔로워 수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사진, 글, 영상이 얼마나 반응을 얻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구조를 단순한 허영심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인정 욕망이 하나의 욕망 배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배치 안에서 사람의 욕망은 타인의 시선, 플랫폼 알고리즘, 자기 이미지, 비교 문화와 얽히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사람이 SNS에 무언가를 올릴 때, 사람은 단지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만 갖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연결되고 싶어 하고, 소속되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욕망의 측면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욕망 자체보다, 인정 구조가 욕망을 어떻게 한정된 방식으로 조직하는가입니다. 플랫폼은 특정한 표현 방식, 특정한 주제, 특정한 이미지가 더 많이 보이게 만들고, 사람은 거기에 맞춰 자신의 욕망을 조절합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인정 욕망이 새로운 관계와 사유를 생산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기준을 반복 강화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SNS 사용을 돌아보면서, “나는 무엇을 보여주고자 욕망하는가?”, “나는 어떤 연결을 욕망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사람은 인정 욕망을 억제하기보다, 인정 욕망을 자신이 원하는 배치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2-3. 들뢰즈와 통제사회: 욕망은 어떻게 관리되는가

현대사회는 단순히 욕망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는 오히려 욕망을 촉진하고 동원하면서, 동시에 욕망을 관리하고 방향을 지정합니다. 들뢰즈는 이런 사회를 통제사회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통제사회에서 사람은 눈에 띄는 강제는 덜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규범과 시스템 속에서 행동과 욕망을 조정당합니다. 사람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움직입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통제사회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조절되는지 보여 줍니다. 사람의 욕망은 경제 시스템, 교육 제도, 직장 문화, 미디어 담론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안정적인 직장, 특정한 소비 수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정상적인 욕망’으로 받아들이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욕망을 비현실적 또는 위험한 것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람의 욕망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축소하게 됩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문제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욕망이 얼마나 다양하게 흐를 수 있도록 허용되느냐입니다. 사람은 통제사회의 메커니즘을 자각할수록, 자신의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언어로 설명되고 있는지를 더 잘 보게 됩니다. 이때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람에게 “욕망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욕망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묻는 도구가 됩니다.

3. 들뢰즈 욕망 이론과 개인 심리, 관계의 재해석

3-1. 들뢰즈와 자기계발, 성취 욕망의 구조

사람은 요즘 “성장하고 싶다”, “성취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강하게 느낍니다. 자기계발 담론은 이 욕망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성과 기준을 강하게 주입합니다. 사람은 생산성, 효율, 경쟁력 같은 단어를 중심으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구조를 단순히 비난하지 않고, 그 배치를 분석합니다. 들뢰즈는 성취 욕망이 어떤 배치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자기계발 배치 안에서 사람의 욕망은 종종 비교와 불안과 결합합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부족한 존재로 느끼고, 욕망을 채워야 할 결핍으로 경험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때 욕망이 가진 생산성을 좁은 틀 안에 가두는 위험을 지적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성취 욕망을 “남보다 더 앞서고 싶다”는 경쟁 에너지로만 이해할 수도 있고, “어제보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구성하고 싶다”는 창조적 에너지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자기계발은 다른 사람의 기준을 따라가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만의 욕망 배치를 설계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활동, 자신이 깊이 궁금해하는 질문, 자신이 의미를 느끼는 관계를 중심으로 욕망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때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람에게 “나는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욕망 배열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도록 합니다.

3-2. 들뢰즈 욕망 이론으로 보는 사랑과 인간관계

사람의 사랑과 인간관계에서도 욕망은 핵심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동시에 사람은 사랑이 욕망과 뒤섞이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욕망이 너무 앞서면 사랑이 망가진다”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 복잡한 감정을 다르게 조명합니다.

들뢰즈에게 사랑은 욕망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배치입니다. 사람은 서로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서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욕망 배치에 들어가면서 함께 변해 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욕망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랑 관계가 욕망을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만드는 위험도 지적합니다. 사람은 상대에게만 모든 욕망을 걸어 버릴 때, 자신의 다른 욕망 배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욕망이 여러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인정하면서, 일부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사랑은 욕망을 지우거나 완전히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욕망 배치가 만나는 독특한 접점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은 이 관점을 통해 사랑과 관계를 소유가 아니라, 함께 구성하는 여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욕망을 억제할 것인가, 구성할 것인가: 들뢰즈의 관점

4-1. 들뢰즈가 보는 욕망 억압 담론의 한계

전통적으로 많은 도덕과 종교는 욕망을 억제하거나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지나친 욕망이 타인을 해치고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욕망에 대한 경계심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들뢰즈 욕망 이론은 욕망을 단순히 억압과 방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들뢰즈는 욕망 억압 담론 자체가 특정한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지적합니다.

들뢰즈는 욕망을 억제하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실제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고, 특정한 시스템에 맞추는 데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사람은 “이 욕망은 위험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욕망을 없애려 하기보다, 옮겨야 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의 욕망은 더 이상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고, 사회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표현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런 상태를 욕망의 억압이자 왜곡으로 봅니다.

들뢰즈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욕망을 무조건 해방하는 것도, 무조건 억압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이 자기 파괴적인 배치에서 작동하는지, 아니면 자기와 타자를 동시에 살리는 배치에서 작동하는지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욕망이 있으니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고, “욕망만 따르면 된다”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둘러싼 구조와 배치를 분석해야 합니다.

4-2. 들뢰즈 욕망 이론과 새로운 윤리: 재배치의 관점

들뢰즈 욕망 이론은 윤리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들뢰즈는 기존의 윤리가 욕망을 부정하거나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습니다. 들뢰즈가 제안하는 윤리는 욕망을 출발점으로 삼되, 욕망이 어떤 배치를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평가합니다. 이 윤리에서는 욕망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흐름과 연결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사람은 이 관점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느낄 때 “이 욕망은 나쁘다”라고 즉시 판단하기보다, “이 욕망이 지금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는가?”, “이 욕망이 나와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욕망을 단순히 눌러 버리기보다, 욕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배치하려는 윤리적 실천입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윤리를 죄책감의 언어가 아니라, 실험과 조정의 언어로 바꾸려 합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통해 욕망의 배치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없앨 수는 없지만, 욕망의 지도를 새로 그릴 수 있습니다. 이때 윤리는 욕망을 차단하는 벽이 아니라, 욕망이 더 풍부하고 책임감 있게 흐르도록 돕는 안내선이 됩니다.

5. 들뢰즈 욕망 이론의 실천: 일상에서 욕망 다루는 방법

5-1. 들뢰즈 방식으로 욕망 관찰하고 기록하기

철학이 실제 삶에 도움이 되려면, 사람은 철학적 개념을 자기 언어와 습관 안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일상에서 욕망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은 연습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가 끝날 때, 자신이 그날 가장 강하게 느꼈던 욕망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 욕망이 물질, 관계, 인정, 휴식, 창작, 탈출 등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지 적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사람은 들뢰즈 욕망 이론의 질문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 욕망은 어떤 배치 속에서 생겼는가?”, “이 욕망은 누구와 무엇을 연결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그만두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면, 사람은 단지 무책임함을 탓하기보다, 그 욕망이 어떤 구조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떤 피로와 어떤 기대와 얽혀 있는지 탐색해야 합니다. 이런 기록을 반복하면, 사람은 자신의 욕망 패턴을 더 잘 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망을 적대시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내 욕망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태도로 자신을 대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런 태도 변화를 통해, 사람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관계를 덜 폭력적이고, 더 협력적인 관계로 바꾸도록 도와줍니다.

5-2. 들뢰즈 욕망 배치 관점으로 삶의 구조 바꾸기

욕망을 관찰했다면, 사람은 다음 단계로 욕망 배치를 조정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하루 구조, 인간관계, 일하는 방식, 여가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욕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지금의 배치가 어떤 욕망을 강화하고, 어떤 욕망을 질식시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작 욕망이 강한 사람이지만, 하루가 온통 긴 회의와 잡무로 채워져 있다면, 사람의 욕망 배치는 이미 불리한 상태입니다. 이때 사람은 작은 조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아침에 20분이라도 창작 시간을 확보하거나, 주말에 집중 시간을 만들어 욕망의 흐름이 완전히 막히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에 따르면, 이런 작은 배치의 변화도 욕망의 생산성을 실질적으로 바꿉니다.

사람은 관계 배치도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특정 욕망이 살아나고, 어떤 관계 속에서 특정 욕망이 움츠러드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든 관계를 유지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욕망을 존중해 주는 관계를 조금 더 가까이 두려는 선택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모여, 사람의 삶 전체 배치가 달라집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런 실천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합니다.

5-3. 작은 욕망 실험: 들뢰즈식 ‘되기-욕망’ 실천

들뢰즈는 ‘되기’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이 고정된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욕망에 이 개념을 적용하면, 사람은 자신을 하나의 욕망 패턴으로 규정하지 않고, 여러 욕망으로 되어갈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나는 원래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단정하는 대신, “나는 앞으로 어떤 욕망을 더 키우고 싶은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작은 욕망 실험은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오래 눌러 두었던 욕망, 예를 들어 배우고 싶었던 기술, 해 보고 싶었던 표현 방식, 하고 싶었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느꼈던 활동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것을 한 번에 전부 이루려 하기보다,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어 실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한 시간짜리 수업을 들어볼 수도 있고, 짧은 글 한 편을 써 볼 수도 있고, 관심 있는 모임에 한 번 참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작은 실험은 들뢰즈식 ‘되기-욕망’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이런 실험을 통해, 자신 안에 잠재된 다른 욕망 배치를 발견합니다. 사람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욕망 구조 밖으로 조금씩 나갈 수 있습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람에게 이런 실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실패를 하더라도, 그 실패가 욕망 지도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들뢰즈가 던지는 질문 – 욕망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 글은 “욕망은 억제해야 할 감정인가?”라는 질문을 질 들뢰즈의 욕망 이론으로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욕망은 자주 결핍, 통제, 위험과 함께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들뢰즈 욕망 이론은 욕망을 결핍이 아닌 생산, 파괴가 아닌 창조, 단일한 감정이 아닌 복잡한 배치의 힘으로 이해합니다. 사람은 더 이상 욕망을 단순히 부끄러워하거나 무조건 추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은 욕망을 분석하고 설계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현대사회가 욕망을 동원하면서도 관리하고, 자극하면서도 통제하려 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소비주의, SNS 인정 구조, 자기계발 담론, 통제사회 메커니즘과 깊게 얽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을 부정하는 도덕이나, 욕망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구호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의 구조를 보는 눈, 욕망의 배치를 조정하는 힘, 욕망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식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사람에게 “욕망을 없앨 수 없다면, 욕망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이 질문은 사람에게 책임을 요구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이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 어떤 구조에 기여하고 있는지, 자신과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질문은 사람에게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통해 다른 삶, 다른 관계,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뢰즈 욕망 이론이 남기는 것

마무리에서 이 글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뢰즈 욕망 이론이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불안, 공허, 욕심, 충동, 열망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혼란 속에서 사람은 종종 “내 욕망이 문제인가?”라고 자신을 의심합니다. 들뢰즈 욕망 이론은 이때 “욕망 자체보다 욕망의 배치를 보라”라고 조언합니다.

사람은 욕망을 적으로 돌리는 대신, 욕망을 대화 상대처럼 대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통해 현재 삶의 구조를 점검하고, 필요한 조정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동시에 욕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새로운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태도는 욕망을 억제할 것인가, 방임할 것인가라는 양극단을 넘어서,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현대사회는 사람에게 다양한 욕망을 부추기지만, 그 욕망을 스스로 이해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독자가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욕망을 들뢰즈의 언어로 다시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자는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어, “나는 이 욕망을 어떤 삶으로 연결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독자는 더 이상 욕망에 끌려다니는 존재만이 아니라, 욕망과 함께 삶을 설계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 변화가 바로 들뢰즈 욕망 이론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