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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 & 현대 사유

‘되기-다수’란 무엇인가? 들뢰즈 철학으로 본 집단성과 다양성

by 둥둥팍 2025. 12. 14.

alt: 여러 개의 실루엣이 하나로 겹쳐지는 추상적 이미지

 

‘되기’와 ‘다수성’이 만나는 철학적 지점

현대 사회는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적 다양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재조정을 요구받는다. 개인은 고유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며, 동시에 사회라는 집합 속에서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이중적 조건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독립된 개인인가, 아니면 다수 속의 일부인가? 혹은 그 둘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기존의 이항적 사고를 전복하며,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안한다. 바로 ‘되기-다수(Becoming-multiple)’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에서 등장하며, 개인이 고정된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타자들과 접속하고 함께 ‘되기’를 통해 다수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되기-다수’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바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과 집단성의 문제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되기-다수’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 존재, 중심 없는 주체성, 관계 속에서 살아 있는 정체성의 가능성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 존재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철학적 틀이며, 특히 공동체, 민주주의, 정체성 정치 등 현대적 이슈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 ‘되기’란 무엇이며, 왜 정체성을 해체하는가?

‘되기(becoming)’는 질 들뢰즈 철학의 중심에 놓인 개념이다. 이는 존재가 고정된 본질을 갖는다는 전통 철학의 관점을 부정하며,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형되고 생성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들뢰즈에게 ‘되기’란 변화 그 자체이며, 자신이 아닌 어떤 것과 접속함으로써 새로운 존재 상태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되기’는 단순한 변형이 아니다. A에서 B로 ‘된다’는 것은, A의 본질이 B로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라, A와 B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양자가 교차하는 접속의 순간에서 새로운 차원이 생성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되기-동물’은 인간이 동물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동물의 감각, 움직임, 존재방식과 접속하여 새로운 존재 형식으로 진입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되기 과정에서 자아는 고정되지 않으며, 중심성도 해체된다.

들뢰즈는 자아(identity)라는 개념이 권력적 구조를 내포한다고 본다. 고정된 자아는 특정한 정체성을 강요하고, 타자를 배제하거나 규정하려 한다. 하지만 되기를 통해 자아는 유동적인 존재로 전환되며,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여기서 핵심은 ‘되기’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되기란 혼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속에서, 다양한 타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성적 운동이다.

2. ‘되기-다수’는 고정된 집단이 아니다

‘되기-다수’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리좀적 사고의 확장선 위에 놓인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많아지는 다수가 아니라, 고정되지 않은 집단적 존재 양식이다. 전통적으로 집단이나 공동체는 동일성에 기반을 두고 구성된다. 즉, 유사한 정체성, 동일한 규범, 공통의 가치 등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형성한다. 그러나 ‘되기-다수’는 이러한 동일성을 거부한다.

들뢰즈는 다수를 ‘집합된 동일한 것들의 총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접속하는 다양성의 흐름으로 본다. 이 흐름은 중심이 없고, 정해진 형태가 없으며, 언제든 새로운 접속이 가능하다. 따라서 ‘되기-다수’는 기존의 집단 정체성과 다르며, 규범적 통제 없이 자발적이고 유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때의 다수는 ‘수적 다수’가 아니라, ‘질적 다수’다.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한 채 하나의 중심 없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운동을 이끌어갈 때, 이들은 동일한 기준 아래 결속되지 않는다. 각자가 지닌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되기’를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이 ‘되기-다수’의 철학적 정치성이기도 하다. 이는 기존의 정치적 집단 형성 방식—즉 리더가 존재하고, 중심 담론이 지배하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되기-다수’는 리더 없는 집단, 중심 없는 사유, 규범 없는 연대다. 이는 해체가 아닌 창조이며, 해방이며, 새로운 정치적 실천 가능성이다. 이 과정 속에서 각 개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과의 끊임없는 접속 속에서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되기’의 집단적 버전, ‘되기-다수’가 의미하는 바다.

3. 다양성과 집단성의 새로운 철학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diversity)과 집단성(collectivity)은 종종 충돌하는 개념처럼 여겨진다. 다양성은 개인의 차이를 강조하는 반면, 집단성은 공통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철학은 이 둘을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조율 가능한 관계로 재구성한다.

‘되기-다수’는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는 집단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각자의 차이를 지운 채 획일적인 틀로 묶는 것이 아니라, 차이 자체를 연결의 조건으로 삼는다. 즉,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을 접속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들’이 함께 작동하는 집단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의 여러 사회운동은 ‘되기-다수’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기후위기 대응 운동, 젠더 평등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은 특정한 정체성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참여자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중심을 추구하지 않고 네트워크형 연대를 선호한다. 이들은 들뢰즈가 말하는 ‘리더 없는 혁명’, ‘중심 없는 사유’를 실제 사회 안에서 구현하는 예시라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철학을 단지 사변적 담론이 아니라, 삶을 실천적으로 변형시키는 도구로 여겼다. ‘되기-다수’라는 개념은 다양성과 집단성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집단 속에서 개인이 지워지지 않고, 개인이 집단을 통해 확장되는 새로운 철학적 기획이다.

결론: ‘되기-다수’는 미래적 공동체의 핵심 개념이다

들뢰즈의 ‘되기-다수’는 단지 하나의 철학적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 방식이며, 새로운 정치적 실천이자 공동체 형성의 대안이다. 고정된 자아나 동일성에 기반한 집단은 오늘날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대신 ‘되기-다수’는 다양성과 연결, 변화와 차이를 수용하는 유연한 공동체 모델을 제안한다.

이 철학은 우리가 타자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집단 속에서 어떻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제 중심이 없는 사유, 고정되지 않는 정체성, 끊임없이 생성되는 연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되기-다수’는 이러한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개념적 도구다.

결국, 진정한 집단성은 다름의 제거가 아니라, 다름의 접속을 통해 이루어진다. ‘되기-다수’는 바로 이 접속의 예술이며, 다양성과 집단성이 대립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미래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철학으로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실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