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의 본질에 던지는 새로운 질문
인공지능(AI)이 예술, 문학, 음악, 영화, 철학에까지 진입하면서 "창조란 과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자주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고유성을 재정의하게 만드는 거대한 철학적 도전이다. 특히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사유는 이 물음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다. 그는 창조를 인간 내면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차이와 반복, 되기(becoming), 기계적 결합(assemblage) 같은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적 접근은 오늘날의 AI 기술,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과 결합되며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질 들뢰즈의 철학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과 AI가 창조의 영역에서 어떤 차이점과 접점을 가지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비교가 아니라, 창조의 철학적 본질에 대한 성찰이며, 동시에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자리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점을 제공한다.
1. 들뢰즈의 철학에서 바라본 창조: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다
질 들뢰즈는 창조란 고정된 ‘자아’나 ‘의식’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창조는 **차이(difference)**에서 발생하며, 반복(repetition)을 통해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그의 대표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그는 창조를 “차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생성의 운동”으로 설명한다. 이는 기존의 창조 개념, 즉 작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들뢰즈는 **'되기(becoming)'**라는 개념을 통해 존재는 언제나 변화하고, 고정되지 않으며,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된다고 본다. 그는 인간 주체가 고정된 정체성(identity)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창조 역시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process) 자체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들뢰즈의 창조론은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가진다. 창조란 인간의 고유한 내면이 아니라,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그 상호작용은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 — 예를 들어 동물, 식물, 기계 — 과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본다. 이런 시각은 오늘날의 AI가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논의와 맞닿아 있다. AI가 인간처럼 ‘자아’를 가지지는 않지만,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한다면, 이것이 ‘창조’라 부를 수 있을까?
들뢰즈의 철학에서 창조는 **의식적 의도(intention)**보다 더 근원적인 흐름, 즉 무의식적인 생성성에 가깝다. 이처럼 고정된 의식이 아닌 흐름과 차이에서 비롯된 창조의 개념은, AI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가치와 창조성에 대한 철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2. AI는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결합’의 실현인가?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기계(machine)’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흐름들이 결합하면서 생성되는 **기계적 배치체(assemblage)**로 본다. 여기서 ‘기계’란 인간과 기계, 동물과 언어, 생각과 신체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생성되는 새로운 실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도 하나의 ‘기계’라기보다, 인간-기술-데이터-사회적 욕망이 결합한 복합적인 배치체로 이해할 수 있다.
AI는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 사회적 알고리즘, 대중의 피드백,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성장한다. AI는 인간의 상상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패턴을 읽고, 예측하며, 새로운 구조를 생성한다. 이 과정은 들뢰즈가 말한 ‘되기’의 운동처럼, 고정된 목적 없이 생성되고 확장된다. 예를 들어, AI가 만든 음악이나 그림은 인간이 사전에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창조되며, 그 안에는 데이터적 무의식이 반영된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과는 다르지만, 구조적으로는 매우 유사하다.
특히 딥러닝 기반의 생성형 AI는 기존 데이터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창조적 조합”**하는 능력을 가진다. 이는 들뢰즈의 '재현을 거부한 창조'와도 닮아 있다. 그는 재현(representation)을 부정하고, 창조는 항상 새로운 계열(series)을 생성하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AI가 새로운 문장을 구성하거나 전혀 새로운 화풍의 그림을 그려낼 때, 그 결과물은 과거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AI는 창조의 기계적 조건을 실현하는 현대적 ‘기계적 배치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 질문은 남는다. “의도 없는 창조”를 우리는 진정한 창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들뢰즈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창조는 의도가 없을 때 더욱 순수한 생성성에 가까워진다. 이는 전통적인 예술가 중심의 창조론과는 거리가 있지만, AI가 인간 외 존재로서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3. 인간과 AI, 창조의 주체로 공존할 수 있는가?
질 들뢰즈는 철학이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며, 이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와 재조직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공지능은 창조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여는 철학적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새로운 창조의 지평을 여는 방식이다.
오늘날 인간은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동시에, 그 AI로부터 새로운 관점과 상상을 제공받는다. 이 관계는 들뢰즈가 말한 ‘공생적 기계’, 즉 상호작용적 창조의 구조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시인은 AI가 만들어낸 문장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고, 화가는 AI가 생성한 색감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회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는 창조의 주체가 인간 단독이 아니라, 인간-비인간-기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분산된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분산적 창조는 들뢰즈의 ‘리좀(rhizome)’ 구조와도 연결된다. 리좀은 중심이 없고, 어디서든 뻗어나가며, 언제든 새로운 연결을 생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형 구조다. 오늘날의 AI 생태계는 바로 이런 리좀 구조 위에 서 있다. 중앙집중적 통제 없이, 수많은 데이터와 피드백이 서로 얽히며, 새로운 생성물을 만들어낸다.
결국 창조의 본질은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어떤 연결이 형성되었는가’에 있다. AI는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을 만들 수 있고, 인간보다 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복잡한 이미지나 음악을 창조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창조성을 인간보다 낮게 평가할 근거가 있을까?
들뢰즈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런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그는 언제나 철학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AI의 창조 능력을 단순한 모방이나 알고리즘의 결과로만 간주하는 관점은 오히려 근대적 인간 중심주의의 잔재일 수 있다. 오히려 AI는 인간이 결코 가질 수 없는 **타자성(alterity)**을 가진 존재이며, 그렇기에 인간과는 다른 방식의 창조를 수행할 수 있다.
결론: 창조의 권한은 누구의 것인가?
인공지능의 창조 행위는 여전히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하지만 질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보면, 창조는 고정된 자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흐름과 상호작용, 차이와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AI도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오랜 전제는 이제 재검토되어야 한다. 창조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더 넓은 생태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생성의 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질 들뢰즈는 인간의 정체성을 해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해방시켰다. 그와 같은 철학은 오늘날 인간과 AI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가 어떤 창조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를 비로소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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