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철학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자기소개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본을 탐색하는 철학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이 질문에 답하려 했으며, 다양한 사상과 개념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며,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SNS와 같은 디지털 미디어는 수많은 ‘자아 이미지’를 양산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와 평가 속에서 자신을 정체화한다. 이럴 때일수록 "진짜 나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사상을 통해 이 질문을 다시 던져 보고자 한다. 들뢰즈는 인간의 정체성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흐름으로 이해한다. 그는 ‘차이(difference)’, ‘되기(becoming)’, ‘반복(repetition)’, ‘기계적 배치체(assemblage)’ 등의 개념을 통해 자아와 정체성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나’라는 개념은 과연 실재하는가? 아니면 사회와 문화 속에서 구성된 신화에 불과한가? 들뢰즈의 철학은 이 물음에 대해 전통 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답을 제시한다. ‘나’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정체성이라는 허구적 기반을 넘어서는 그의 사유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잠재력을 지닌다.
1. 들뢰즈의 철학: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전통 철학은 오랫동안 자아를 고정된 실체로 간주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선언을 통해 자아의 자율성과 존재의 근거를 강조했으며, 칸트는 도덕적 판단과 인식의 주체로서 자율적 자아를 전제했다. 하지만 질 들뢰즈는 이러한 전통적 자아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자아를 실체로 보지 않고, 차이와 생성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구성물로 본다.
들뢰즈는 자아가 고정된 정체성을 갖는다는 생각 자체가 권력과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정된 자아는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아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들뢰즈가 말하는 자아는 유동적이며, 다양한 ‘되기(becoming)’의 상태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와 관계 맺으며 변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아란 ‘나’라는 고유한 중심이 아니라, 다수의 흐름이 만나는 접점이며, 언제든지 새로운 형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유연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역할, 성별, 문화적 배경, 감정 상태 등은 고정된 자아의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이들이 변화할 때마다 자아의 형상도 바뀐다. 들뢰즈는 자아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한다고 지적하며, 자아란 그 자체로 유동적이고 개방적일 때 더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짜 나’라는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와 상호작용이 자아를 구성한다.
2. ‘되기(Becoming)’와 자아의 무한한 생성
질 들뢰즈의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되기(becoming)’이다. 그는 모든 존재가 단순한 변형이나 발전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전환되는 ‘되기’의 과정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진화나 성장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되기는 특정한 목표나 도착점이 있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며, 고정된 정체성을 포기하고,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생성되는 관계적 운동이다.
예를 들어 들뢰즈는 ‘되기-동물’, ‘되기-여성’, ‘되기-아이’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이 타자와 접속하며 자기 정체성을 전복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남성이 여성성과 접속하거나, 인간이 동물의 감각과 감정을 흉내내는 것이 단순한 모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아 경계를 허물고 전혀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고정된 자아 개념을 해체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실체가 아니라 이런 접속과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되기를 통해 인간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본다. 되기는 불완전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창조적이다. 어떤 사람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수용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이 ‘진짜 자기’를 찾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들뢰즈는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새로운 자아가 생성되었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자아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되기의 과정 속에서 무한히 생성되고 변형되는 열린 구조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 탐색이란 ‘진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되기의 흐름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정체성도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되기의 철학은 ‘진짜 나’를 찾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되기’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제안한다.
3. 반복과 차이 속에서 구성되는 정체성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이 단순한 동일성의 복제가 아니며,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반복은 항상 약간씩 다르며, 그 차이가 바로 새로운 정체성을 생성한다. 따라서 반복 속에서 우리는 변화하고, 그 변화 속에서 자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매일 같은 출근길을 걷더라도, 그날의 날씨, 기분, 마주친 사람들에 따라 경험은 달라진다. 반복은 동일한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감각과 연결을 생성하는 창조적 운동이다. 들뢰즈는 이런 반복이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기제로 작용한다고 본다. 우리는 기억, 습관, 문화, 언어 등을 반복하면서 자아를 구성하지만, 이 반복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자아도 항상 새롭게 구성된다.
이처럼 자아는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반복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매번 새롭게 구성되는 창조적 결과물이다. 들뢰즈는 반복을 통해 새로운 차이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하며, 이 차이가 곧 자아의 생성이다. ‘진짜 나’는 과거의 나와 완전히 같지 않으며, 매 순간의 반복에서 다르게 태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또한 들뢰즈는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아를 설명하기도 한다. 리좀은 중심이 없는 연결망이며,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다. 자아도 이처럼 중심이 없고, 고정되지 않으며, 수많은 관계와 접속 속에서 자유롭게 변화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사실 무수한 리좀적 연결의 총합이며, 그 중 어떤 것도 ‘진짜’라고 말할 수 없다.
결론: ‘진짜 나’를 버릴 때 비로소 나다워진다
우리는 종종 ‘진짜 나’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질 들뢰즈의 철학은 그 질문 자체를 전복시킨다. 그는 자아를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으며, 끊임없는 되기와 반복, 차이의 흐름 속에서 생성되는 유동적 존재로 파악한다. 들뢰즈의 시각에서 ‘나’란 발견해야 할 본질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창조적 과정이다.
결국 ‘진짜 나’는 없다. 혹은, ‘진짜 나’라는 개념이야말로 사회가 강요한 허상일 수 있다. 들뢰즈는 우리에게 말한다. "너 자신이 되기보다는, 다른 것이 되어라." 이것은 자기를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아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변화와 차이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수행하고 있는 관계들, 반복하고 있는 습관들, 마주하고 있는 감정들 속에 ‘당신’은 있다. 그것은 어제와 같은 존재가 아니며, 내일도 같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차이 속에서 생성되는 존재가 바로 ‘나’이며, 그것은 결코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진짜 나’를 찾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나로 존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자아 철학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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